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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수용소에서 후기 본문
오랜만에 독서 후기로 돌아왔다. 이번에 책을 장르별로 여러권 샀는데 가장 기대되고 읽고 싶었던 책이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이다. 뭔가 심오하고 철학적이고 사람의 삶속에서 교훈을 얻는 내용을 통해 새로운 시각을 얻는 것을 좋아하는데 이 책이 그런 기대감을 더해주지 않았나 싶었다.
저자 빅터 프랭클은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3년 동안 다하우와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에서 보냈고 그 안에서의 이야기와 정신과 교수로써 느꼈던 점들을 설명해주었다.
매번 영화 요약본으로만 보고 느꼈던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에 대한 소재였는데 책을 통해 접하니 흥미로웠다. 내부에 있던 사람의 이야기를 직접 듣는듯했다. 읽으면서 좋았던 글귀와 느낀점은 다음과 같았다.
-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딜 수 있다.
나치 강제 수용소에 있었던 사람들은 수감자 중에서 자기가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 더 잘살아남았다고 저자는 말해주었다. 절망적인 상황속에서도 무엇을 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지 견뎌낼 수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재목이었다. 요즘 경제가 어렵다 어렵다 많이들 한다. 그로 인해 기업 채용은 점점 줄어가고 쉬고 있는 청년들이 40만으로 역대 최대라고 한다. 너무 안타까운 사회이다. 마음대로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상황에 지쳐 역대 최대가 되지 않았나 싶다. 그러한 순가에서도 조금씩 자신이 할 수 있는 하고싶은 일을 일궈낸다면 어려운 상황도 견뎌 결국 빛을 볼 것이다. 함부로 속단할 수 없지만 모두 힘내서 나아갔으면 좋겠다.
-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가 삶에 무엇을 기대하는가가 아니라 삶이 우리에게 무엇을 기대하는가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삶의 의미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것을 중단하고, 대신 삶으로부터 질문을 받고 있는 우리 자신에 대해 매일 매 시간마다 생각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 인생이란 궁극적으로 이런 질문에 대한 올바른 해답을 찾고, 개개인 앞에 놓인 과제를 수행해 나가기 위한 책임을 떠맡는 것을 의미한다.
- 행복은 얻으려 한다고 해서 얻어지는게 아니라 어떤 일의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다. 사람이 행복하려면 ‘행복해야 할 이유’가 있어야 한다. 일단 그 이유를 찾으면 인간은 저절로 행복해진다. 인간은 행복을 찾는 존재가 아니라 주어진 상황에 내재해 있는 잠재적인 의미를 실현시킴으로써 행복할 이유를 찾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학교 > 회사 > 사회로 나가는 과정에서 대화의 주제는 현 상황과 시대의 흐름에 맞게 변한다. 우리 취업할 수 있을까? > 우리 집 살 수 있을까?, 투자는 어디가 좋더라 등 건설적인 대화가 되었다면 좋은 부분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모두가 정해진 답을 찾아가는 것만 같았다. 이게 행복이 맞을까? 만들어진 길로만 다니고 무거운 주제에 한숨부터 나오는 상황이 안타깝기도 했다. 물론 그 사람이 생각하는 가치에 위의 것들이 삶의 1순위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인생 자체를 돈을 벌어 집을 사고 유복한 삶을 사는 하나의 정답이라고만 생각하지 않았으면 한다. 책에서도 인생이란 개개인 앞에 놓인 과제를 수행해 나가기 위한 책임을 떠맡는 것이라고 했다. 각자의 정해진 길에 따라 행복해야 할 이유를 찾으며 정답에 연연하지 않고 각자에게 주어진 과제를 해결해나가며 나아가는 것이 건강한 삶을 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 아내와 아이를 잃은 사람에게 농작물을 밟지 말라했더니 “그런 말 하지 말게, 그만큼 빼앗았으면 충분한 거 아니야?” 내 아내와 아이는 가스실에서 죽었어. 그것으로 더 이상 할 말 없는 거 아니야? 그런데도 뭐라하다니!
나는 큰 아픔을 겪어왔어 이 정도는 해도 되지 않아? 위험한 발상일 수 있다. 아무리 자신이 부당한 짓을 당했다고 하더라도 똑같은 복수를 한다면 결국 그 사람과 같거나 더한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 영화는 수천 개의 장면으로 이루어져 있고, 각각의 장면마다 뜻이 있고 의미가 있다. 하지만 영화의 전체적인 의미는 마지막 장면이 나오기 전까지 드러나지 않는다. 영화를 구성하고 있는 각 부분, 개별적인 장면들을 보지 않고서는 영화 전체를 이해할 수 없다. 삶도 이와 마찬가지 아닐까? 삶의 최종적인 의미 역시 임종 순간에 드러나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이 최종적인 의미는 각각의 개별적인 상황이 갖고 있는 잠재적인 의미가 각 개인의 지식과 믿음에 최선의 상태로 실현됐는가, 아닌가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닐까?
삶을 영화에 빗대어 설명했던 구절이었다. 최근에 본 영화가 해당 비유에 가장 큰 공감이 될 것 같아서 사례를 적어보려고 한다.
최근에 애니멀 킹덤이라는 영화를 보았다. 사람들이 동물로 변하는 바이러스에 걸리고 사랑하는 가족, 친구가 변해가는 모습을 보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주인공과 그들이 가지는 감정의 변화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해당 영화의 첫느낌은 재난 영화인가? 싶었다. 사람들이 동물로 변하다니 같이 공존하는 것일까? 전쟁이 일어나는 것일까? 전혀 장르를 예상할 수 없었다. 하지만 개별적인 장면이 아니라 해당 영화가 진행되며 장면들이 이어지고 그 안에서 사람들의 감정이 변하는 모습에 몰입하며 재난, 전쟁 등의 장르가 아니라 감정선을 잘 표현한 영화라고 생각했다. 내가 본 영화 중에 재미로 정말 손꼽는 영화라고 생각됐다. 위의 구절처럼 하나의 장면으로 이해할 수 없고 전체를 보며 재미를 느꼈던 영화였다. 이처럼 삶도 마찬가지로 하나의 성공의 순간이 아니라 다양한 감정과 결과에 따라 마지막 임종 순간에 그 의미가 드러나는 것은 아닐까? 라는 부분에 공감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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